역사적으로 처음 언급 되기는 BC 310년 제 2차 삼니옴 전쟁때 로마의 함대가 사르누스 강에
상륙하여 공격하려다 실패 했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하지만 BC 89년 로마 장군 루키우스 코린넬리우스 술라에
의해 마침내 로마에 함락되었다는 기록이 있었으나 그 장소가 어딘지 모르다가 위 비석을 통해 마침내 Pompeii라는 사실이 판명되다.
AD 1803년 ~ 1873년 영국 역사 소설가 E. G 리턴에 의해 쓰여진 폼페이 최후의 날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더욱 세인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다. 이 소설은 빙겔의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삼은 드라마다.
공창을 옆으로 낀 삼거리, 이렇게 화려한 곳에 공창이 있었다니~
현대식 이름을 빌리면, 최고급 콘도 휴양지 전경.
휴양지 전면 풍경
VIP용 휴양지 입구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케하는 시체의 모습.
졸지에 날벼락을 맞고 죽어가는 최후의 의식 끝자락엔 과연 무슨 생각들이 숨어 있었을까? 앉아서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똘히 하다가 그 재앙을 만났을까?
앉은 자세의 성교 장면 화석이 모조품이라는 설도 최근 흘러 다니고 있다.
당시 사망자 수는 2,000 명설과 20,000 명설이 있다.
人道와 車(마차)도의 구분이 명확하다.
마차 바퀴가 할퀴고 간 자욱 깊이로 연대를 추정한 고고학자에 따르면 BC 2500년의 유구한 도시였다는 설이다.
현대 최고급 일류 호델 사우나보다 더 우아하고 훌륭한 사우나 시설에 경탄이 절로 난다.
이때가, 신석기 시대로서 우리나라 선조가 몽촌토성 움막에 기거할 때 쯤이다.
언제 그런 재앙이 있었더냐고 하듯, 베수비우스 바로 턱밑에 평온히 살아가고 있는 마을 풍경.
이태리 남부 나포리만 연안 항구도시 Pompeii를 끼고 도는 사르누스 강은 베수비우스
활화산을 비웃기나 하듯, 지금도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Pompeii는 수많은 광관객들의 의아스런 눈총을
받아가며 옛 화려했던 향수를 갈망하면서 도시국가와 로마의 속국 자리를 맴돌았지만 결국 1861년 이태리로 완전 합병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