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사는 보금자리엔 종달새 노래부르고 라이락향이 내코끝을 만져주는 봄의여운을 만끽하지만 여기 백두정상 天地엔 봄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르는것만 같았다. 봄의 끝자락 5월하순인데도 눈발이 날리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찾아 喜怒哀樂을 맛보는 설악에도 4계절 모두 다른옷으로 갈아입고 세파에찌든 우리를 감싸안아 다독여 주는데 사회주의 사람들은 그네들이 즐겨야할 樂마져도 앗아갔단말인가, 그렇길레 초여름을 맞이하다가 온 우리들에게도 좀처럼 봄날의 따스함을 보여주지 않으니 말이다. 민속 마을을 나와 찾아간곳이 웅담을 판매하는 곰 농장이네. *웅담 설명하는말은 않듣고 곰에게 과자를주며 노니닥거리는 할멈, 농장사람들이 얼마나 미워했을깜?* 메스컴에서 나쁘다고 그리 떠들어 데어도 아직도 웅담을 체취하여 판매를하고 있었다. *웅담 술을 한잔씩 나눠주는 판매원의 조선족 사람, 까운 입은 사람들* 우리들은 웅담보다는 곰에게 먹이를주며 노니닥거리는것이 더더욱 추억에 남았으리라.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농장을 나오니 가이드인상이 좀 그런거 같두먼,-괜히 지 발이 저려서 그런건감- 그다음은 윤동주 시인을 배출한 용두레천의 용정으로간단다. *대성중학교 마당에선 방화동 서당 학생들과 필자와 할멈* 그옛날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배출한 대성중학교, 윤동주 시인은 이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대성중학 하면 먼저 윤동주 시인이 떠오른다. 서 시 (序 詩) - 윤동주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서시를 읇조우면서 들어선 대성중학교 마당, 학생들이 모여 체육을 하고있었고 나무그늘에서 땀을 식히는 학생들이 다들 우리 조선족 4~5세들이란다, 아직도 조선이라는 뿌리를 잊지않기위해 중국말을 쓰지않고 조선말로 공부하고 대화를한단다. 구여븐 것들---. *옛날엔 대성중학였지만 지금은 지명을 따서 룡정 중학이란다* 2층 우리 민족영웅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며 돌아본 박물관에서 우리 방화동 서당 에서 찾았다는 서명과함께 쪼멘한 성금을 내고는 돌아섰다. 돌아서서 들런곳이 라텍스 판매점이였다, 2일날 들렀다는것은 나의 착각였다. *라텍스에 훌러덩 들어 누워버린 양인성씨* 박영숙씨가 하나를 샀는데 베게 하나더 뺏아줄려고 중간 역할을 하니 안판다고 찌이럴 옘뱅을 하데, 나도 질쎄라 사지말고 나가자고하며 손을잡아이끄니 가이드가 중간역할을해서 결국 베게하나를 더 얻었다. -참 잘했지 그치 !--- 라택스 점을 나와 우리민족의 애환이 담긴 두만강으로 우리일행을 실어 나른다. 두만강 푸른물에♬~♩노젓는 배에~엣싸고~옹~♪~♬. *두만강 앞에선 할멈* 연길로 연길로 삶을 찾아 떠났던 조선족 애환을 그린 노래였지. 드뎌 조선땅 우리동포를볼수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푼 가슴은 쿵덕쿵 뛰고 있었다. 중국 도문 마을과 북한의 남양이 마주한 도문대교가 보인다. 저건너 민둥산이 북한이라는데, 우리나라 60년대에는 메아리가 벌거벗은 산에서는 살수없어 떠났다는 동요가있는것처럼 나무심기가 국민으로써는 꼭 이행해야는 거였는데, 여기 북한은 산에나무를 일부러 베어낸다네, *바로 강건너가 북한땅, 건너편 산들이 대부분 벌거숭이 민둥산으로 돼있었다.* *손만뻗으면 닿을꺼같은 북녘땅 숲사이로 북한 초소가 보이고 머이메둘이서 앉아노니닥거렸다* 그래야 산속에 숨어사는 반동분자들을 찾을수 있고 또 반동분자들이 피신하는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서그런다네, 손만 뻗으면 닿을것 같은 두만강의 북녘땅---. 강을사이에두고 두나라가 연결되는 도문 다리, 그절반쯤에 한줄의 붉은선을 긋고는 넘을수 없는 凍土의땅 북한이다. 저기 다리위로 중국과 북한을 왕래하는 자동차가 보이고 그자동차를 따라 가보고싶은 충동을 느끼며 이런 살벌한 광경의 북한 동포들은 마치 괴담영화에서처럼 머리에 뿔이 나있고 스쳐지나면서 안녕하고 말이라도 붙일라치면 눈꼬리 치켜뜨고 사람잡아먹을것같은 인상을 하고있다는 생각은 우리가 어릴때부터 받은 반공 교육때문 이였으리라. 그런데 늦은 오후 마실나와 앉은 아낙들도 한가로왔는데, 코도 삐뚤어져있지 않았고 엉덩이에 꼬리도 없었다. 사람대하는 형태가 내가듣던 불친절은 오히려 우리 나라 재래시장이 여기 북한 사람들 대하는것보다 몇곱절은 더한것 같은 느낌이였다. * 두만강 뱃놀이 하는 부두에서 판매하는 막걸리 * *가이드가 사서 선상에 넣어준 막걸리로 한잔쭈우--욱* 그옛날 막걸리한잔에 목청을 돋우시던 아버지로부터 익히들어 알았던 두만강--- 이제 老齡으로접어드는 내가 여기서서 우리선조들의 애환을 내것으로 만들어서 더덤어본다. 이것으로 4일간의 일정이 저물어가고 낼이면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아쉬움을 대신하였다. 해서 목단강으로 가는 버스에서 6시간이란 긴 여행을 하며 밤11시가넘어서야 아침식사가 부실하다는 그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또다시 새벽잠을 놓치고 할멈이랑 이곳 새벽 시장을 찾았다. 야채랑, 생선이랑, 조류 에다가, 네발 달린 짐승의 육고기까지 다있는것같았는데 그런것들을 둘러본 할멈은 다들 비위생적이라며 낙후된 삶을 살아가는 뒤떨어진 사람 같으단다. 역시 부실한 아침식사를 하고는 마지막 관광지인 8 녀 투강비가 있는 해란강이다. 왜넘들과 싸우다가 총탄이 떨어지자 총을 부셔버리고는 8 명의 꽃다운 아가씨들이 강으로 투신하여 순국한 기념비다, 그기엔 13세의 소녀와 18세의 두소녀는 우리 조선족의 꽃다운 처녀였단다. *젤로 왼쪽의 박학범씨는 처음으로 가이드 한다며 인사할때도 덜덜 떨며하던 신출레기였고 젤오른쪽이 이미옥 가이드인데 우리 조선족사람였다* 이것으로 5일간의 백두산 여행의 끝자락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했다. *한국으로 가는 뱅기에 오르기전의 박영숙씨와 울 할멈인 박영희씨 * -방화동 서당 훈장 德山 오 치 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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