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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원주-제천 구간 중앙선 이야기

오딧쎄이어 2020. 10. 22. 10:44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원주-제천 구간 중앙선 이야기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기자말>

[박장식 기자]

- 1편에서 이어집니다.

치악산의 루프터널을 지난 열차가 서울 방향으로 가고 있다.(왼쪽) 오른쪽이 루프터널을 넘은 뒤 제천 방향으로 향하는 철길. 두 철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 박장식


중앙선 열차가 반곡역을 지나 본격적으로 치악산 옆을 타고 오르는 길은 역동적이다. 바로 옆 중앙고속도로가 힘 들이지 않고 커다란 교각으로 죽죽 가는데, 기차는 급한 경사를 이길 수 없어 최대한 산과 밀착해 오른다. 기찻길이 산과 반대로 가는 길은 루프 터널이다. 열차가 20m의 고도를 극복하기 위해 한 바퀴를 빙 둘러간다.

반곡역에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열차는 중앙고속도로와 점점 높이를 맞출 채비를 한다. 열차는 금대리에 접어들면 치악산과 백운산 사이를 날아가듯 오른다. 1940년 개통한 첫 다리는 높이만 백척(30m)에 이른다고 '백척교'라 불렀다는데, 까마득하게 아래로 금대리를 내려다보면 그 높이가 실감난다.

그러고도 열차는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과감하게 길을 비틀어 한 바퀴를 오른다. 루프 터널(또아리굴)인 금대2터널 안에 들어서면 몸이 왼쪽으로 꺾이는 것이 느껴진다. 터널을 나왔을 때 몸을 비틀면 뒤로 지나온 선로가 까마득히 보인다. 기진맥진한 열차는 치악역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마주오는 열차가 오면 비켜가기도 한다.

치악역은 열차가 멈추지는 않는 조그마한 간이역. 김주혁과 문근영이 나온 <사랑따윈 필요없어>에 등장하기도 했다. 승강장도, 대피할 공간도 없이 위험하지만, 산에 폭 안긴 모습의 치악역은 위기의 순간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는 결정적인 장면으로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치악산 아래에서, 치악역 앞에서 이 터널을 바라보는 것 역시 색다르다. 치악산 아래에서 보면 열차가 지나는 길이 아슬아슬하다. 블럭을 쌓듯 올린 라멘교(상판과 보, 교각을 일체형으로 지은 다리)가 장관이고, 열차가 터널에 들어선 뒤 까마득한 위에서 순간이동을 하듯 등장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모습만큼은 장관이지만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또아리굴을 지을 때에는 조선인들이 징용되어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심하게는 사고로 죽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백척교 역시 조선인들의 피와 땀이 어린 슬픈 역사의 흔적. 치악산을 넘는 비경을 무작정 아름답게만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치악역과 금대2터널, 백척교 일대는 중앙선 열차가 사라진 뒤에도 그대로 남아있는다. 원주시가 기차를 테마로 한 테마파크를 조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무거운 시멘트를 끌고 산을 타고 넘던 육중한 화물열차, 멀게는 서울과 부산까지 오갔던 무궁화호 열차는 산으로 파고들어도, 오히려 사람들이 찾는 즐거우면서도 울림이 있는 좋은 관광지가 되길 내심 소망하게 된다.

탁사정 앞 물이 얼면... 지나던 열차가 사라집니다

원주 끄트머리의 간이역인 신림역. 역 이름의 유래인 성황림의 모습이 역 바깥에 그려져있다.

ⓒ 박장식


치악산을 한 바퀴 타고 오른 열차는 신림역에 멈춘다. 서울에서 가장 바쁜 전철역 중 하나인 신림역과 이름이 같지만, 모습은 전혀 다른 원주의 신림역은 제천과 동해, 청량리로 가는 열차가 하루에 넉 편 선다. 역은 신림면 읍내까지 걸어서 30분 거리인데다 읍내 복판에 중앙고속도로의 IC도 있어 이용객은 많지 않다.

이 지역이 '신림'이 된 데에는 가까운 거리의 성황림(천연기념물 93호) 때문이었다고 한다. 치악산,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키는 영물인 나무 90그루가 있는데, 사람의 발길이 끊기자 생태의 보고가 되었다. 지금은 당제를 지내는 일년의 단 두 번, 그리고 특별한 견학 프로그램으로만 사람들의 방문을 허락하는 숲이다.

신림역의 건물 겉에는 이 성황림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그리고 신림역에서 국도로 나가는 길도 울창한 나무로 터널이 만들어져있다. 성황림이 치악산의 사람들을 지키듯, 신림역에 그려진 성황림이 사고 없이 안전하도록 철길을 지키고, 신림역 앞의 나무들이 신림역을 번듯하게 지켜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신림역의 역명판은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것만 같다.

ⓒ 박장식


열차는 이제 조금이나마 편한 길로 제천에 간다. 제천에 가기 전에는 탁사정을 잠시 스치고 간다. 조선 선조 대에 제주 수사를 지낸 임응룡이 해송 여덟 그루를 심어 '해송정'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을 씻어낸다'는 의미로 탁사정이 되어 있다. 여름에는 탁사정 계곡에 물놀이 온 사람들로 가득한데, 다음 여름에는 지나는 열차가 없는, 어쩌면 허전한 여름이 될 것만 같다.

탁사정을 넘어 열차는 구학역을 잠시 지나친다. 2004년 이후 16년째 역에 열차가 서지 않는 구학역은 이제는 역무원조차 없는 간이역이다. 구학역을 지나가면 열차가 본격적으로 제천으로 들어선다. 중앙선 복선화에 맞춰 새단장을 하는 봉양역을 지나 역시 번쩍번쩍한 역사로 새로 연 제천역까지 도착하면 사라지는 철길을 따라 함께한 56.3km의 여행은 끝난다.

'구비구비 길'이 터널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치악역 인근에 설치된 라멘교. 산악철도와 산업철도에서 자주 보이는 특별한 다리이다.

ⓒ 박장식


중앙선 서원주 - 제천 구간의 복선화 공사가 완료되는 것은 12월 중하순 경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미 새로 개통하는 역은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새로 중앙선 일대를 지날 준고속열차가 시운전을 갖고 있다. 이번 겨울 서리를 맞고, 첫눈을 맞으면 비경을 지나고, 간이역을 지나는 중앙선의 정취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80년 동안 사람들을 실어날랐던 중앙선 일대는 대격변을 맞이한다. 12월 원주-제천 구간 이설에 앞서 11월 7일이면 단양-안동 구간이 옮겨진다. 풍경과 속도가 등가교환되는 모습이 야속하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숙원과도 같았던 일이니 아쉬움과 기대가 차례로 오간다.

완행열차인 무궁화호도, 급행열차인 새마을호도 잠시 속도를 늦추고 덜컹이는 중앙선은 꼭 타볼 가치가 있다. 본 적 없는 간이역에 서고, 가을 단풍이 새빨갛게 물든 모습을 보는 것은 제 아무리 뛰어난 화질의 TV로도 담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곧 있으면 사라지는 비경을 통과하는, 눈이 바빠지는 기차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청량리역에서 7시 5분에 안동으로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 제천역에서 오후 5시 51분에 출발하는 청량리행 무궁화호를 타면 구학역과 치악역을 제외한 이설 구간의 모든 역에 정차한다. 열차 안에서 가만히 바깥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만, 반곡역이나 신림역, 동화역 중 한 곳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더욱 좋다.

                                   -방화동 서당 훈장 德山 오 치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