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짚트 여행 이바구

이짚트 여행 이바구 2일째-1-오전.

오딧쎄이어 2011. 12. 9. 14:12

 

 

 

2일째  이짚트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수많은 유적이 살아있는 룩소르로 가기위해  아침 4시부터  깨운다.

극기훈련같은 일정의 시작이다. 아침 7시15분 뱅기로 6백여km떨어진 룩소르행이다.

호텔에서 도시락을 준다했는데  아예  아침식단을  마련해놨다.

가서 보니 빵 3종류뿐  먹을만한것이 없다, 더구나 5시반에 먹을려니 목구멍에 넘어가질 않는다.

해서  새벽 한기와허기를  뜨거운  국물이있는  컵 누룽지와 빵한조각으로  식사를 가늠한다.


오늘의 룩소르 일정중  오전의 일정은   왕들의 사후 부활을 꿈꾸며 무덤을  호화롭게 만들어 묻힌 

 왕가의계곡을 둘러   바로 옆의 함세수트 여왕 葬祭殿(장제전) 이고 돌아 나오면 

 멤논의 巨像을 둘러보는것이 오전 투어다.

         *동이 트지않은  카이로 뱅기장은  뱅기까지 버스로 이동한다*


궁뎅이가 펑퍼짐한 서양인,

갈라비안 (우리나라  한복 두루마리 같은옷)을 걸친 아랍인  머이메(머슴애)들과  

까아만 복면같은 희잡을 두른 아랍여인들,  가끔은  까아만 피부의 흑인들이

보는 나로하여금  약간은 이질감을  느끼게한다.

 

 

 

남행열차  아니 남행 뱅기는  어둠을  빛으로 가르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숨가쁜듯  내달리고 있다

 

그옛날  서구문명은  이곳 나일문명을 시작으로  

요즘의 터키근처지역 페르시아 문명으로  연결되고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그리스 문명,  조금뒤의 로마문명으로 이어져 

오늘날의  서구문명의 기반으로  구축이된 인류 최초의 문명발상지이다. 

이런 서구문명의 시작이라해도  지나침이없는  이짚트에서도  

룩소르는  이짚트 문화유산이  60 %정도가 여기있을 정도면서  

지금도  곳곳이    파는곳마다  미이라가 나올정도로   미스테리의 도시이다

룩소르는 그옛날 인구(서울 인구에버금가는) 1천만까지 번창했던도시가   지금은 겨우 2만이란다

룩소르(궁전)라는  말그데로  나일강을 사이에두고 서쪽은  무덤이 있는곳이고  

 동쪽은  궁전이 모여있는 관광특구의 도시다

우리도  죽으면  북망산천으로 간다듯이   여기 이짚트도 죽어서는  해가지는

서쪽으로 간다네여,  그런것을 보면  우리랑  좀 닮은데가 있었던것 같으다,



수도 카이로에서 대략  650 여 km 떨어진  그옛날 신전들이 모여 있는곳이라 

마치  우리나라  경주와같이  이짚트의 역사가 다모여있는 곳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해서  룩소르를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고도  하는곳이기도 하다.

설레는맘속에 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버스를타고  눈이 휘둥그레 뜨고는  

여기 룩소르에와서  젤로 먼저간곳이  왕가의 계곡이다,

         *왕들의 무덤이있는 계곡입구에선 필자와 할멈*

 차에서 내리니 날씨는  우리몸을 찜질은 아니래도 후덥함을 느껴  물병을 챙기게 한다.

   11월 28일인데말여---

썬그라스가없으면 눈이부셔 눈이 다칠것만같고 

땀은  나자마자 말라버리는 熱砂(열사)지역이다

구름한점없는 하늘아래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하려  손을 이마에  대어보지만 

이역시  내세를꿈꾸며  맹거러놓은  왕들의  사후보금자리랑 같은 이치아닐꺼나?

 그파라오들이 하나같이 부활의 기쁨조차 누리지못한    아무 소용없는짓 이였으니 말이다.

 

 

     -The valley of the kings-

         -왕가의 계곡-

근대왕국중  제18왕조에서  20왕조, 

그러니까  BC 1600- BC 1200 년 까지만들어진 무덤인데 

피라미드 형식보다는 미이라가 도굴되는것을 방지하기위해  피라밋처럼 보이는   

岩(사암)을 파서 만든것인데

투트모스 1세가 자신이들어갈   장제전을 만들면서부터 시작됬는데 

1922년  하워드 카터 라는사람이 발굴한  투탕카멘 왕의 무덤하나만  제데로 발굴됬고 

나머지는 전부 도굴된 상태였었다. 

그 파라오들도  내세를위해  도굴범들의눈을피해  산의 암석에다  

이렇게  깊이파고 만들어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는데  

남들이 보면 무덤이 아닌것 같은 형태로 만들었지만

그마져도  대부분이 도굴당해 버려 

많은 것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람세스 3세의 무덤방은 길이가 80 여m는 됬고  또  방들이 십여개는 됬는데  

나일강이 범람해  물이 찰것을 염려해   물을 빼는 수로방까지 만들었다니 

 도데체 그옛날  이짚트 인간들의  건축 기술은  어느경지까지 도달한 것이였을까? 

그걸보는 나는  氣(기)가  꽉 차버린다.

람세스 9세의방은 색체가 너무도 선명해  엊그제 완성했는거 같았고,

 

 

벽화엔  미이라를 만드는 장면이 생생히 그려졌는데 

내장(內腸)은  항아리에담고  심장은 몸속에 그냥그데로두면서  

딱정벌레를 넣어  부활을 기원하는모습을 담았다.

그림속에는  딱정벌레, 매, 양이 등장하는데 이는 朝, 中, 夕을 의미한단다. 

 

 

 

                               *딱정벌레앞의 필자와 할멈*

 

 

하여튼  그림의끝자락에는  태양으로 부활하는 그림은

여인들이 항아리를 어깨너머걸치는모습에서   환희를 만끽하는 부활이였으리라,

한곳에서 또다른 곳으로 이동할땐  툭툭이라는   열차식  객차이다.

 

 

 

               *어디던지 어린아이들이 우루루 모여와서  완돌라(1 달러)에 메달린다*

 

 

암튼  나의 생각으로는  그들의 삶이 도데체 어떤형태로 살아갔는지가

무척이나  신비스럽고   허망하기까지했다.

 함세수트 여왕  투트모스3세의  두 政敵(정적)간의 

오벨리스크가 말해주듯이  이장제전을 살펴 

연대를 추정해본다면BC 1600 - BC 1200 년 까지로 

이때의 파라오들의 무덤형식은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피라밋형식을 크게벗어난

암굴을 파서 만든  분묘로 

부활할때  미이라가 도굴당해부활을  못하는 것을  방지 하기위해  만들었다한다.

람세스 2세랑 그아들, 람세스3세, 4세, 7세, 11세, 세티1세, 2세

그리고 아멘호텝2세, 함세슈트여왕, 투탕카멘 등등

여러 파라오들이 묻혀있고

지금까지 발굴된 64기중에서 9방만  일반들에게  공개되고 있었다.

 

 

 

 

첫번째는  투탕카맨의 무덤인데 

발견후 10년간 작업이계속됬었고 

유물들은 현재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다

이때 발굴을 시도한 사람들이  시름 시름 앓다가  모두다 죽었는데 

 

 

 

 

그때부터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이  여기서부터 유래됬다고 하네

 

 

 

 

두번째는  계곡 가장 깊숙히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는 무덤인데 

합세슈트 여왕 뒤를이은 투트모스 3세묘인데  

합세슈트 남편인  투트모스2세가 죽을때 왕의자리에 섭정됬으나

서자출신이라는 핍박아래  왕의자리를 합세수트 여왕에게 뺏겨버리고  

원한에 사뭊혀  이빨을  갈기시작한다

나중에  왕의자리에 오르고난뒤에는

신전들과 모든기록을 파괴해버리지만

 나중에 후세들이 다시 복원시켜놓았다고 한다

허나 그녀 함세수트는  대규모  원정 수확을 17회나 거두는 

위대한  파라오로  이짚트의  나폴레옹 으로 남게된다

5호 고분은 람세스2세의 가족묘인데

52명의 아들과  100여명의후손들을  위해 만들어진  무덤이였다.

세번째는  관광객들에게  제일 인기가좋은   람세스 6세의무덤인데 

벽화가 제일 화려하고 생생한 색체감에  역사를  기록으로 살필수있는 방이다.

아무턴 

고대 이짚트왕들은  하나같이  집권만 하면 

뭣땀시 죽음에대해 그렇게도 집착들이 강했는지 

도무지  그사람들의 섭리를  아무리 이해할려도   아리숭하기만 했다.  

실내에서는  촬영금지인데도  

그노무 한푼에는  사진찍는 찰칵소리도   그들은 돈나오는 소리로 들렸을께다. 

그한푼이란게  그들말로  박시시 란다.

단돈 1달러에  헤헤작 거리는  족속들이 

저 거대한 문화유산의 후예들이란것에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왕가의 계곡을  뒤로하고  합세수트 여왕의 葬祭殿(장제전) 으로  발길을 돌린다,

 

 

 

돌아서서 합세슈터여왕이 맹거런  장제전이다,

역시 사후에  다시 살아나는 꿈을 꾸며  만든  장례식장인셈이다.

 

 

 

아무턴  한번  손에쥔  권력은  사후에서도

유지하고픈  욕망들이 생기는가부다.

세월의 무상함을 뒤로하고  돌아서니  멤논의거상이다.

 

 

 

    *할멈이 있는 쪽 거상은 지진에 파괴된것을  재건하였기에 

조그만 돌을  연결하여 만들었고  내뒤의것은

     한개의 돌로써 만들어져 있다, 할멈뒤의것은  소리내어 운다는데,

그건 바람이 돌사이로 스치면서 나는소리란다*

뒷쪽에 보이는 왕가의 계곡이 있고,

그옆산은  합세슈터 여왕의 장제전이 있는곳이다.

오전의 투어는  이것으로  막을 내리고 

새벽에  시원찬케 먹었던탓에  배고픔은  못참겠두먼---

점심 식사는  서쪽의 무덤가를 떠나   동쪽의 신전들이 있는곳으로 

 펠루카(하얀 이짚트 돛단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가서 

현지식으로  먹는 호텔 뷔페식이다.

 

 

 

 

 

 

 *하얀 돛단배 펠루카를 타고  나일을  건너다*

 *동쪽의 神殿 들이 있는곳의 호텔에서  午餐(오찬) 이다---허기져서 그런지 꿀맛이다 *

오후 일정을 위해 잔뜩 먹고  일어서니  식권증이  닥아 온다, 

 새벽에 일어났으니 그럴만도 하겠지--- ㅎㅎㅎ.

 

 

 

   -방화동 서당 훈장 德山 오  치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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