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이바구

인도 여행 이바구 -8- 인도 역사의 대표 얼굴 타지마할.

오딧쎄이어 2012. 11. 9. 14:00

 

6시 기상인데 5시가 안되어 눈이 뜨진다

그토록  보고잡던  타지마할을 만나는 날이다

허나  벌써 4끄니나 굶은 할멈 걱정이 먼저된다.

슬그머니  이마에 손을 대어보니 열은 엄찌만

깜빡 잠들었던 할멈이  눈을 뜨고 나랑 눈이 마주친다

수도 엄시 들락이던 화장실은 좀 뜸해 졌단다.

팔팔 끓인물에 갖고온 누룽지를 갖다주니 한그릇을 다비웠고

그제서야  힘이 난단다

조심스레 오늘 투어는 꼭 참석 하자고 다짐하며 길을 나선다

 

 

인도  마지막 왕국인

                                                        무굴제국의 극치를 이룬  Agra,

황제  샤 자한(Shah Jahan) 이 17년간 함께살며 14명의 자녀를두고

15번째아이를 출산하다가 죽은 황후

아르주 만드 바누 베감(뭄 타즈마할)을 못잊어

          무덤 을 짓게 하는데  바로 타지마할이라는 걸작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도

死後에 거처할 天國마저도 맘이 놓이지않아

영원한 아름다움이라는 마할의 왕관을  세웠는가?

샤자한의 애절한  슬픈 사랑 이바구가 실려있는 곳-타지마할 이다.

*내가 찍은 사진이 날씨가 흐려 희미하기에 구글에서 발췌해온 타지마할 사진을 올린다*

                                                                                                   *내가 찍은 타지마할 사진*

         22년동안  연인원 20만명씩과 코끼리 1000마리씩 동원시켜

그당시 4백만루피( 1년 국가 예산의 절반 가까이되는 돈)를 들여

국고를 탕진해가며 이슬람 식의 이건물을  건축한다.

   이것이  지금은  상상도 할수 없는

세계 에서 젤로 아름다운 무덤으로 

세계 문화 유산으로 남아 우리를 반긴다.

타지 마할 입구 1km 밖에서는

전동차로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매연으로 이문화유산이 망가지는걸 방지함이란다.

*입구까지 타고가는 전동차*

 입장료는  인도 인은  20루피 이고 외국인에게는 750루피(약25,000원)를.

     받고 입장 시키는데 

인도인이 입장하는문이 다르고

외국인이 입장하는 문이 따로 있다

대신  외국인들에겐 생수한병과 비닐 덧버선을 준다

 

 입구에서 부터 몸수색이  작난이 아니다.

*비싼 입장료 댓가로 받은 생수한병과 비닐 덧버선이 든 봉지*

        입장할때 디카외에는  거의다 압수한다고 보면  맞는말이다.

     뾰족한  손톱깍기 마져  들어가는 입구 물품 보관함에 보관 해야한다.

          벽에 붙은  보석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란다

*출입문에서 몸수색작업이 작난이 아니다, 궁뎅이까지 더듬으니까*

  하루에  5번은  새로운 색깔로 변한다는  대리석은 

              유럽과 중국등에서 수입 하여 맹걸었다

*샤자한 & 아르주 만드 바누 베감-구글에서 발췌*

 

 

 

*4귀퉁이에 서있는 열주는 각도가 98º로써 어디서 보아도 안쪽으로 쏠려있다*

 

*상감 기법으로 무늬와 보석들을 넣은 출입문*

 

*어쩜 이리도 섬세한  상감 기법일까?*

*타지마할 서쪽에 똑같은 모양으로 세워진 이슬람 사원*

*이슬람 사원이 서쪽에다 지어놓자 나라에서 대칭을 이루기위해 같은 형식의사원을 동쪽에다 세운다*

      타지마할은  아침  일출부터 일몰때랑, 보름달이 비추일때,

   각기 다른  색으로  비춰진다니  그모습 또한  궁금하기 짝이 없다.

벽의 부조는 상감 기법으로

깍아내기 힘든 대리석을 일일이 조각하고 파내어

다시 붙여넣는방법이 상감 기법인데

정말  대단하다.

 

 

이건축물도 지하에는 나무토막을 박아넣어

진도7~8의 강진에도 견디는 내구성을 지니게 만들었다

정말 대단한 공법이다.

돌아서면 타지마할 옆으로  야무나강이 흐르고

이강 건너편에 또다시

검은대리석의 타지마할을 꿈꾸다가

아들  아우랑 제브에의해

붉고 붉은 아그라성 으로 유배의길로 오른다

* 타지마할 옆으로 야무나강이 흐르고, 건너편  아담한 숲에 이보다 더한 검은 타지마할을 꿈꾸었던 샤자한의 꿈은 사라졌다*

여기 서도 신발위에  덧버선을 신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비닐 덧버선으로 껴신는 중*

*먼저 출입한 사람들이 벗어논 비닐 덧버선*

*인도인들은 생수와 비닐 덧버선을 못받았기에 여기에 신발을 벗어놓고 들어간다*

                                                                얼마나 황후를  사랑했기에  死後에도 못잊어서

  저런  어마어마한  건축 물로써  사랑의 징표를 남기려 했을까?

       한사람의 사랑의 징표라는 권력 남용에 동원된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사람들이었고  어떤  취급을  당하였을까?

       이짚트에서 본  쿠푸 왕의 피라밋과

      캄보디아   자야바르만 2세 황제의  앙코르왓,

  진시황의 만리 장성과 무덤은  과연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고서야

              그  거대한  건축물들이 이룩 됐을까 ?

그렇게 크나큰 희생을 치루고서야

저런 걸작품이 이룩 됐지만

당시 백성들의 원한이 너무도 컸기에

아들에 의해 샤자한은 아그라성으로  유배당한다.

      길을 지나치며  보이는 사람들 마다 다들 순하게만 보이고

   자신들에게 처해있는 가난이라는 현실 마져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런  순수함이 있었길레  한사람의 치욕에

   자신들의  목숨까지 받쳐가며  그렇게 구속되어 있었을꺼이다.

           지금에사  돌이켜 보면  전부다  인생 무상인것을---

저 타지 마할이라는  건축  한개만으로도

샤자한이란  한인간의  망상이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암시해주고있었고

침묵으로 보여주는  그깊은  사랑의 속살이기에

힘겨워 짊어지기도 힘든 이바구 봇짐으로 묶어  등짐을 져본다

    -방화동 서당 훈장 德山 오  치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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